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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채근담

남해회사 버블 (South Sea Company)

책 "대중의 미망과 광기" 근대 유럽의 3대 버블 중 두번째 남해회사 거품 (South Sea Company) 을 정리해 보았음.

※ 남해는 남아메리카 대륙과 인근의 섬을 가리킴

남해회사 거품도 결국 프랑스의 미시시피 거품을 벤치마킹한 것임

당시 영국 정부와 의회는 우리가 "존로"따위보단 훨씬 똑똑하니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함. 그렇게 부채를 주식으로 바꿔 주식버블을 키우다가 같은 시기 1720년 버블이 터지고 당분간 골로간 것임.

 

버블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다.

 

1. "남해회사" (설립은 1711.1)

□ 배경

- 당시 영국은 20년간 전쟁 수행하느라 1000만 파운드 규모의 부채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해회사" 활용하기로 함.

- 남해회사는 영국정부의 국채를 매년 6%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사들이고, 다시 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함. 또한 남미와의 무역독점권도 부여 받음.

- 즉, 정부 국채를 보유한 채권자는 결국 남해회사의 주식으로 국채를 전환해 국채를 줄이고, 영국정부의 빚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

- 주식과 국채 교환비율은 "시가:국채 기준"인데 즉 주식의 액면이 100이고 시가가 300이면, 국채 300을 주식100으로 교환하고 남은 200은 그대로 남해회사의 이익화하는 계획.

- 위 계획과 별개로 실제 사업성은 형편 없었는데 그 이유는,

1) "남아메리카 무역"이 주요 사업이라면서 현실은 스페인과 포루투갈이 남미를 식민지배 중이었음.

2)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는 영국의 무역선이 남미에 자유로이 드나들도록 허용할 의지가 없었음.

3) 그나마 허용한 무역규모가 페루, 칠레, 멕시코의 항구에 영국 무역선이 일년에 한번, 한척씩만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음.

4) 이마저 이익 중 4분의 1은 스페인 국왕몫이고 나머지 4분의 3에 대해서는 5%세금을 부과하는 조건이었음.

- 1717년 영국 무역선이 남미에 처음 도착하여 무역개시를 했지만, 다음해인 1718년에 스페인은 약속을 어김 (입항금지)

이렇게 남해회사는 실제로 경영난 상태 였으나, 이 와중에 남해회사 주식의 인기는 하늘을 뚫고 있었으니...

 

 

□ 팍 올랐다 확 내림

- 당시 남미무역에 대한 소문과 대중들의 인식은,

1) 남미 광산의 금/은 매장량이 엄청나고, 현지 원주민들이 이를 시가 1%값으로 팔고 있다.

2) 스페인/영국간 통상조약이 영국에게 유리하게 체결될 것이고 남미에 영국무역선이 자유로이 입항할 것이다.

- 그러면서 남해회사의 주식은 큰 인기를 끌었다. (실제 사업성은 형편없었다.)

※ 남해회사 주식발행 현황은 3,100만파운드의 주식발행 = 액면가 100파운드 주식 31만장 발행

- 1720.1 존블런트경 주도 남해회사의 이사들은 남해회사 활동으로 국가채무를 해소하는 방안을 의회에 제출하여 받아짐

- 20.1월 130파운드 -> 20.5월 500파운드 -> 6월초 890파운드 -> 투자자 일부가 이익실현을하며 640파운드까지 하락 -> 남해이사들 주도하여 대리점들에게 주식을 매수하게금 해서 750파운드까지 상승 -> 8월초 1000파운드까지 오름

- 남해회사의 상승기조에 은행, 동인도회사의 주식도 덩달아 상승하고 또한 "남해회사"와 유사한 온갖 신규회사들이 난립하여 주식을 발행하기 시작

- 정부는 6월 <거품 회사 규제법> 규제를 만들고 8월 고지를 함. 근데 이 조치가 유사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주가의 폭락 트리거가 되는데...

- 존볼런트 및 남해회사 이사, 정부관료들은 한발 먼저 주식을 팔기 시작해 9월 700파운드까지 하락 (특히 정부 관료들은 남해회사 주식이 더 오르면 주식:국채 교환비율이 떨어져 시작해야 하는데-> 9월 초 주주총회 남해회사 채권발행 의결 -> 영국은행 300만파운드 채권 발행개설하여 판매 -> 대중들로부터 남해회사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나 인기가 전혀 없었음 -> 투자자들은 "남해회사는 끝물이다" 투매 to 투매로 135파운드까지 하락하게 됨

 

□ 수습과 교훈

- 많은 투자자들이 파산하고 자살함. 투자자들의 거센 항의에 이 버블사건과 연루된 정보관료 모두들은 색출되어 자리에서 물러남..(?)

- 결국 영국은 금융질서 회복방안 차원에서 남해회사의 주식과 국채를 영국은행과 동인도회사에게 팔았음.. 특히 영국은행은 공범 취급. 이 후 무역과 북해 포경업을 운영하다 1854년 문닫음

- 사후 분석한 남해회사의 회계장부는 온전히 거짓이었고, 회계담당자는 프랑스로 도주한 상태 였음. (신변 인도 받지 못함)

- "주식회사"란 동인도회사의 성립에서 시작해 남해버블이라는 위기로 표면화 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 자금 조달을 하는 "주식회사"는 정당한 제3자에 의해 회계 기록의 평가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공인회계사 제도와 회계감사 제도가 탄생하게 됨.

※ 실제로 남해회사의 회계부정을 감사한 보고서 〈브리지 상회의 장부에 대한 소견〉은 세계 최초의 회계감사 보고서로 인정 받고 있음

 

P.S "모두가 남해회사의 계획을 신뢰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주가상승에 따른 차익만을 노린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주가변동이 심해 불과 몇 초 사이에도 차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저축을 하는 것에 만족하기를 거부했다. 거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대중을 부주의하고 방종하게 만들었다. 이로인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치풍조가 일어나고 도덕이 해이해지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 아이작 뉴턴

 

남해회사 주식